“발작은 멈출 수 없어도, 당황은 막을 수 있다” – 간질 환자 여행자를 위한 응급 매뉴얼

간질(뇌전증) 환자를 위한 여행 전 준비와 응급 대처 매뉴얼. 발작 발생 시 주변인의 행동법부터 약물 관리까지 실용적 안전 가이드.

1. 여행 전 준비가 생명줄이 된다: 나만의 안전 프로필 만들기

간질(뇌전증) 환자가 여행을 계획할 때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응급 시를 대비한 ‘정보 카드’ 다.
이는 여권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. 이름, 진단명, 복용 중인 약물, 응급 연락처, 발작 시 대처법 등이 명확하게 적힌 카드를 지갑 안에 보관하거나 휴대폰 배경화면에 설정하면 긴박한 순간에도 타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.

또한 현지 언어로 번역된 문장을 포함해 “저는 간질 환자입니다. 발작 시 구급차를 불러주세요.” 같은 문구를 준비해두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. 특히 유럽, 동남아, 미주 등 의료체계가 다른 지역에서는 사전 준비된 언어자료가 생명을 지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. 여행 일정과 항공편, 숙소 위치까지 간략히 기록한 비상문서를 가족 또는 친구에게 공유해 두는 것도 안전한 선택이다.

---

2. 약은 여행의 핵심 장비: 분실·지연에 대비한 전략

간질 환자에게 복용약은 생명선이다. 국내에서 복용 중인 약을 반드시 여행 기간보다 2~3일 더 여유 있게 챙기고, 기내 수하물과 체크인 수하물 두 곳에 분산 보관하는 것이 원칙이다.
만약 약이 도난, 분실, 파손되었을 경우를 대비해 영문 처방전, 약 성분명, 병원 진단서도 함께 준비해두자. 성분명이 있어야 현지 약국에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.

또한 타임존이 바뀌는 경우에는 의사와 사전 상담을 통해 복용 시간 조정을 받아야 한다. 시차에 따라 발작 빈도가 증가할 수 있으므로, 여행 전후 3일은 휴식 위주 일정으로 구성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.
실제로 한 여행객은 비행 스케줄 직후 약 복용 타이밍을 놓쳐 공항에서 쓰러진 사례가 있었는데, 이는 충분히 예방 가능한 상황이었다.

---

3. ‘응급상황 시 주변인의 행동 매뉴얼’ 공유하기

여행 중 간질 발작이 발생하면, 주변인의 빠른 대응이 생명을 구한다.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인은 발작을 처음 보면 당황해 하거나, 심지어 억지로 환자의 혀를 잡으려는 잘못된 행동을 하기도 한다. 따라서 여행 전 동행자나 가이드를 대상으로 아래 사항을 반드시 공유하자.

• 발작 시 억지로 제지하지 말 것
• 머리나 몸 주변의 딱딱한 물건을 치워 다치지 않게 할 것
• 발작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지켜보며 시간 기록
• 5분 이상 지속 시 즉시 응급요청
• 발작 후 의식 회복 시 편안한 자세로 호흡 도와주기

나는 실제로 이런 지침을 작은 인쇄물로 만들어 동행자에게 나눠줬던 적이 있는데, 그들이 훨씬 더 안심하고 나를 도와주려 했던 기억이 있다. 간질이라는 질병에 대한 사전 교육이 곧 보호망이 될 수 있다.

---

4. 나를 위한 여행, 예측 가능한 변수를 줄이는 것이 핵심

여행은 ‘일탈’의 상징이지만, 간질 환자에게는 계획된 안정이 필요하다. 무리한 일정, 잦은 야간 이동, 수면 부족, 스트레스는 발작 유발 요인이다. 따라서 여행지는 접근성과 병원 시설, 기후 등 감정적·신체적 안전 요건을 고려해 선택하는 것이 좋다. 예를 들어, 의료 인프라가 잘 갖춰진 지역이나 큰 병원이 근처에 있는 숙소를 고르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안정감을 크게 높일 수 있다. 또한 혼자 여행하는 경우라면, 1일 1회 안전 확인 연락을 주고받는 루틴을 미리 가족과 정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. 여행이란 결국 나를 위한 것이고, 나를 지키는 일이 여행의 출발점이어야 한다.
완벽한 계획보다 중요한 것은, 내 몸과 마음이 버틸 수 있는 일정을 짜는 것임을 잊지 말자.

---

준비된 여행자는, 언제나 안전하다!

간질 환자의 여행은 위험하기보다, 준비되었느냐의 문제입니다. 당황은 줄이고, 안전망은 키우는 방법을 차근차근 마련해 나간다면, 누구든 여행을 향해 나아갈 수 있어요. 발작은 예측할 수 없지만, 우리는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. 내가 나를 더 잘 이해하고, 내 주변까지 교육시키는 과정이 바로 ‘진짜 나를 위한 여행’의 시작입니다.